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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책

절제의 기술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나온다
지나치게 다양한 선택지와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개인은 쉽게 파편화된다.
정말 중요한 몇 가지를 선택하고, 거기에 지속해서 마음을 기울이는 능력이 더욱더 필요하다.
먼저 첫 번째 원칙은 '선택지 줄이기' 이다.
우리 마음에는 '쾌락 쳇바퀴' 라는 비극적 시스템이 있다. 무언가 무척 얻으려 애쓰던 것을 막상 손에 넣고 나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에 익숙해지고 더 이상 매력과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가시 새로운 다른 무언가를 손에 넣기 위해 애쓴다.
두 번째 원칙은 '진짜 원하는 것 하나만 바라기'이다.
인생을 성찰하다 보면 모든것을 다 가지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새 번째 원칙은 '감사하고 기뻐하기'이다.
네 번째 원칙은 '단순하게 살기'이다.
다섯 번째 원칙은 '기쁜 마음으로 뒤쳐지기'이다.
나는 이책을 읽는 독자들이 다섯 가지 원릭 모두에 동의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이 책을 읽으며 각자 사신만의 입장을 세우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는 절제의 기술을 통해 적당히 만족함으로써 유혹과 욕망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법과 정말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삶에도 '더 적게, 대신 더 철저하게' 라느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 개념의 자기 절제만이 아니라,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신뢰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시멜로 실험에서는 나중에 더 큰 보상을 얻기 위해 눈앞의 욕망을 참는 것이 절제다. 이런 생각에는 기회주의적이며 도구주의적인 논리가 깔려 있다. 어떤 행동이 이익이 되니까 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다른 행위들보다 옳은 행동이 있다는 사실을 소홀하게만들 위험이 있다.
쾌락적응이란 우리의 행복수준이나 욕망이 충족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의 기준치로 되돌아가는 성향을 말한다.
마치 순간의 쾌락을 계속해서 느끼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투여량을 높이는 마약중독자처럼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욕망을 구멍이 난 항아리에 비유한다.
절제는 계속해서 쾌락 쳇바퀴를 달리는 행위, 새로운 쾌락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행동을 멈추는 데 쓰여야 한다.
우리 삶에는 선택할 것이 많은 걸 대체로 좋아하지만 , 거기에는 분명한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인의 마음을 끊임없이 흐트러뜨리는 유혹의 문화를 세심하게 묘사했다.
한번 접속하면 거기에 푹 빠져 몇 시간씩 정신을 놓게 된다.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 그런게 아니다. 원래 사용자기 그렇게 중독되게씀 고안 되었기 떄문이다. 사용자가 스크롤을 내려가며 새로운 게시물을 보는 동안 새로운 업데이트가 끊임없이 추가된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던 가장 중요한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타인과 육체적으로 가까지 교류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얻게되는 중요한 기술 말이다. 바로 사람들과 만나고 공감하고 교류하는 사회적 능력이다.
물론 그냥 자리에 않은채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해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으려고 애쓸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쉴 새 없는 유혹의 문화 속에서 사는한, 그런 개인적인 노력은 대부분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꾸어야한다.
눈앞의 욕망만 좇게 된다면,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경험하길 원하는 걸까?
살면서 모든것을 다 해봐야 한다는 유혹은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더 많은거'을 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 문화의 본질적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에 '저스트 우잇!' 이라고 말하는 철학과 죽기전에 가능한 많은 일을 하라는 명령 까지 더해지면 거의 종교처럼된다.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온갖 유혹과 부추김에 끊임없이 노출되며, 우리가 품은 욕망은 문제없는 것이 된다. 의미있는 욕망과 무의미한 욕망을 구분하기 여려워진 것이다.
욕망을 최대한 실현하겠다믄 야망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한다.
진정의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불필요한 욕망을 절제 하고, 기꺼이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전부 붙들고 다 이루려고 애쓰는라 정작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게 되거나 , 틀 없는 삶 속에서 욕망에 휘둘리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사는 대신, 정말 가치 있고 중요한 단 한 가지에 마음을 쓸 줄 알아야한다.
우리는 매순간 어떻게 해야 최대의 이익을 얻을지만 고민하는 계산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세상 그리고 타인들과 맺는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외향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 개인이 아무리 훌륭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모든 일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는 없다. 신중하게 굴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배워야 하며 가끔은 뒤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침묵의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말하는 능력은 덕이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은 말하는 능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침묵하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절제는 이러한 인색함과 한없는 관대함 사이에서,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사림이 이야기한, 충동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불쑥 찾아오는 온갖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결코 의지를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사고와 성찰 없이 그저 충동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닐 뿐이니까. 우리는 자기 총동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능력만큼, 그림고 우리 자신의 가치를 비롯한 여러 관점에서 충동을 따를지 억제할지 올바르게 결정을 내리는 능력만큼의 자유의지를 갖게된다.
자기동일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사람을 하나의 전체로서 성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삶을 하나의 서사로 보는 것이다.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며 자기 자신을 일관된 서사로서 이해할 때 비로서 도덕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절제해야한다. 심지어 절제 까지도."
물론 절제의 목적은 적절하고 좋은 삶을 사도록 돕는데 있고, 그것은 윤리적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가운데 하나 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절제도 지나치면 해롭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올바른 절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 하면 잘 다듬어진 감정만이 올바른 절제를 기를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죄책감은 도덕률을 위한반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지만, 떄로는 근거 없거나 왜곡된 자책감을 느끼게 한다.
자기계발 요구는 우리 삶의 긴 과정에 끝없이 되풀이될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으로 퍼진다. 결코 한계를 모른다.
이렇게 브레이크 없고 멈춰 세울 수 없는 자기계발 문화 속에서 개인의 행복은 크게 위협받는다.
1800년 10억 명 정도였던 세계인구는 현재 78억 명쯤 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소비는 40배, 생산은 50배 증가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환경적, 정치적 측면에서 절제가 필요 하다는 목소리다.
사회가 비교적 평등할때, 놀랍게도 최고 부유층 삶 역시 나아진다.
적극적 자유를 누리려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고, 개인적으로도 통찰력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절제의 기술은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내앞에 놓인 무언가를 기쁘게 내려놓는 마음이다.
한계 없는 자유는 우리를 해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비시킨다. 틀이 없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뿐이다.
우리느 필요하지도 않은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헤매지 말고, 불핑요한 선택지는 과감히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의 모든 상화에서 모조리 직접 선택하려 들지 말라. 모든 상황이 선택의 순간이 된다면 정신이 너무 피곤할 것이다. 때론 습관에 기대는게 낫다. 특에 박힌 방식으로 행 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매순간 습관과 틀이 전혀 없는 삶이야 말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오직 최만 좋다는 생각은 말이 안된다. 어떤 것이 내게 썩 만족스럽다면 그건 좋은 게 맞다.
대부분의 결정은 돌이킬 수 없다.
무건가에 중독될 땐 '쾌락 쳇바퀴'를 떠올려라
남과 비교하지 마라
몹시 원하던 것을 얻는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이전의 행복 수준으로 되돌아 간다. 이 점을 깨닫고 나면 새로운 차를 사든 , 휴가지 숙소를 예약하든,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지든, 우리가 처음에 기대했던 큰 행복이 영원히 조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라. 이 충고야 말로 내가 절제와 관련해 말하고 싶은 핵심이기도 하다. 인간애개 자기 자신을 훈육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헛된 유혹에 빠져 모든 것을 가지려 하지 말고 적당히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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